스포츠사회학 이론 (3편)

여성이 운동하고 있는 뒷모습

다양한 스포츠사회학 사회이론중 이번 글에서는 비판이론에 대해 설명해 보고자 한다. 비판이론은 문화산업의 하나로써 스포츠를 바라보는 입장에서 TV에 중계되는 프로스포츠는 대중들의 허위 욕구를 만들고 충족시키는 기제에 불과하며 이를 지켜보는 미디어 수용자들은 미디어의 노출에 피동적으로 반응하는 ‘군중’일 뿐이다라고 규정한다.

 

비판이론: 스포츠는 대중을 기만하는 문화산업이다

비판이론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과 노동자 계급의 해방을 목표로 마르크스주의(Marxism)의 전통을 계승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지점에서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와 갈라서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마르크스 이론이 싹트게 된 역사적 상황과 사회적 문제의식이 다음과 같이 달랐기 때문이다.

첫째, 비판이론이 처해 있던 20세기는 19세기 마르크스의 예언과 달리 영국과 같이 자본주의가 고도화로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산주의(사회주의) 혁명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는 ‘왜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자 계급에 의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하지 못했을까?”라는 문제제기로 이어졌다. 비판이론은 이에 대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역량을 지나치게 맹신했다고 비판하였다.

둘째, 사회주의 혁명(러시아 혁명, 1917년 3월 혁명과 10월 혁명)을 성취했다고 여겨지는 현실 정치 체제에 대한 실망과 혐오이다. 1917년 제정 러시아에서 성공을 거둔 사회주의 혁명은 마르크스주의의 실현 가능성으로 희망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스탈린 치하의 소비에트연방은 해방된 사회가 아니라 또 다른 억압과 독재가 판치는 중앙집권 체제로 나아갔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는 히틀러와 ‘독소 불가침 조약(1939년)’을 체결하면서 당시 유럽의 비판적 지식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던져주었다.

셋째, 20세기 자본주의 체제는 자본주의가 파국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위기관리 능력을 통해 체제 내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교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특히 비판적 지식인들을 당혹하게 만들었던 것은 독일 나치즘이나 이탈리아 파시즘과 같은 독재 체제가 수많은 대중의 열렬한 지지 속에서 노동자 계급의 저항을 무력화하는데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미국 사회 노동자의 다양한 대중문화의 유혹과 쾌락 속에서 행복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들에게 노동자의 해방은 시대착오적인 구호에 불과했다.

 

(1) 주요 내용

흔히 프랑크푸르트학파라고 불리는 20세기 비판이론가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을 지나치게 교조주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대신 이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은 토대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부구조인 문화에서 나온다고 인식했다. 즉, 더 이상 문화는 토대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상부구조가 아니라 스스로 이데올로기를 생산해 남과 동시에 거꾸로 경제적 토대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비판이론가들은 20세기 자본주의(후기 자본주의) 체제를 파국으로 치닫는 사회로 규정하였다. 그 원인은 인류의 역사가 계몽의 전개 과정에서 ‘총체적으로 관리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총체적인 지배가 가능하기 위해 인간은 우선 대상을 지배하고 효율적으로 자각하기 위해 대상을 수량화하고 계산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합리화의 도구로 전락한 ‘도구적 이성’이 전면에 나서게 되었다고 보았다. 이는 베버의 합리화 이론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베버는 이를 ‘도구적 합리성’으로 설명하였다.

한편, 총체적으로 관리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전체주의적 사회 질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아도르노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를 ‘잠재적으로 전체주의적’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잠재적인 전체주의 사회는 왜 대중들의 저항과 반발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일까? 비판이론은 그 답을 대중매체를 통해 전파되는 대중문화에서 찾았다.

도구적 이성(합리성) 비판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는 도구적 이성 개념을 주관적 이성 개념과 연관시켜 설명하였다. 그에 따르면 계몽의 기획은 형식적이고 도구화된 주관적 이성의 강화로 발전했으며 이로 인해 현대 문명의 위기가 발생하게 되었다. 여기서 주관적 이성이란 목적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고 오로지 주어진 목적에 적합한 수단을 계산하는 것에만 몰두하는 이성이다.

효율성과 계산 가능성을 추구하는 도구적 이성은 대상을 관리하고 통제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근대 자본주의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1910년대, 노동 과정의 세분화와 분업화, 부품의 규격화, 그리고 컨베어어(conveyer) 시스템을 통한 높은 생산성 달성을 기반으로 한 대량 생산, 대량소비로 이어지는 포디즘(Fordism)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반면, 도구적 이성은 다른 한편으로 인간으로서 진정으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점점 더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즉, 인간의 이성적 사유는 진정으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 스스로를 반성하고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버리고 어떻게 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에만 몰두하는 도구적 이성이 되어버렸다.

 

문화산업(대중문화) 비판

아도르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문화와 예술이 더 이상 문화와 예술이라는 범주 속에서 고찰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즉, 전통적인 관점에서 문화는 인간적인 가치와 창조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산업에는 적대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하에서 문화는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하나의 사업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대중문화의 산물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보다도 얼마나 인기를 끌었고 수익을 얼마나 올렸는지에 좌우된다.

이러한 견해는 토대와 상부구조라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의 이분법을 거부하는 것이다. 문화의 상품화는 상품생산의 논리가 경제의 영역 밖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예술과 문화의 영역까지도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문화는 이데올로기일 뿐만 아니라 산업이기도 하다.

문화산업의 산물에 나타나는 특성은 ‘표준화(standardization)’와 ‘사이비 개성화 (pseudoindividualization)’라는 두 개념으로 요약된다. 먼저, 표준화는 대량생산 체제의 산물로서 대중문화가 겪을 수밖에 없는 본질적인 특성이다. 예를 들면 대중음악은 32마디로 구성되어야 하며 음역은 9도 내로 제한되며 곡은 가장 기본적인 화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드라마는 그 소재가 남녀 간의 사람은 기본, 신데렐라 스토리나 출생의 비밀, 불륜, 불치병 등으로 한정된다. 이처럼 문화산업이 표준화되는 이유는 가장 확실한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 곳을 지향하는 자본 투자의 원칙 때문이다. 어느 한 작품이 성공했다 싶으면 새로운 작품들이 이를 흉내 내는데, 이 과정에서 표준화가 확립된다. 문화산업의 두 번째 특성인 사이비 개성화는 표준화와 더불어 늘 함께 추구된다. 표준화는 실패의 확률을 줄일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성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대중들에게 항상 새롭고 예전에는 없으며 개성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줘야 한다. 그러나 이는 개성인 척하는 가짜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표준화되고 획일화된 문화산업의 산물은 항상 동일하게 반복되는 것에 대해 기계적이고 수동적으로 반응하게 함으로써 수용자의 적극적이고 반성적인 사유를 위축시킨다. 왜냐하면 늘 동일한 것에 익숙하게 길들여진 대중은 별다른 정신적 노력 없이도 문화산업의 신물을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중은 즐기기만 하면 된다. 결국 문화산업은 대중으로 하여금 고된 일상의 괴로움을 한순간 잊어버리고 현실로부터 도피하게 만드는 일정의 마취제이자 아편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즐김이주는 도피는 현실의 억압과 모순에 대한 저항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결국 기존의 지배질서에 순응하게 만들고 이를 확고부동한 것으로 만드는 ‘사회적 시멘트’의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문화산업은 허위적이고 조작된 욕구와 이데올로기들을 유포한다. 그리고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제공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기만이고 위선이다. 단지 위로부터 아래로 일방적으로 허위적인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도구일 뿐이다.

 

(2) 스포츠와 비판이론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문화의 영역으로 확대하여 경제결정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문화의 새로운 측면들에 주목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시각에 있어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에 경도되어 있는 까닭에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스포츠에 대한 평가는 지극히 부정적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스포츠를 비자율성과 체제 종속성을 지닌 문화산업으로 이해한다. 그들은 노동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재화의 생산행위인 반면, 여가는 그러한 노동의 생산행위에 필요한 에너지의 공급원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문화적 형태로서 스포츠는 자본주의 계급지배 아래 합의를 도출해주는 기능적 선결요건으로 간주된다. 이때 스포츠는 여가시간의 상품화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를 보호하고 이윤과 사회통제를 동시에 이루게 되는 대중문화의 전형적인 특징을 대변하게 된다. 스포츠는 일종의 대중기만이며 스포츠 활동의 선택과 소비는 철저히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공급되고 지배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비판이론은 스포츠가 문화로서 상품화 되면서 문화의 품위와 해방적 기능을 추락시켰다고 가정한다.

스포츠의 도구적 이성(합리성) 비판

비판이론가들이 비판한 자본주의 사회의 도구적 이성은 특정 목표 달성을 위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발견하는 것으로 노동체계에서 나타나는 극명한 현상은 노동의 분화 및 분업이다. 이는 근대 스포츠에서도 명확히 나타난다. 대표적인 예로 전문화(여기에는 거트만이 제시한 관료화도 포함될 수 있다)를 들 수 있다. 선수는 본래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이성과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성이라는 관점으로 봤을 때 분업화된 팀과 그렇지 못한 팀 간의 효율성에는 극명한 차이가 나타난다. 이러한 이유에서 자본주의 스포츠 또한 승리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율적 수단으로서의 전문화는 필연적이다. 그 결과 야구에서 투수는 선발, 셋업맨(원 포인트 릴리프 포함), 마무리. 심지어 패전투수로 세분화 되어졌다. 미식축구는 전문화의 극단을 보여준다. 각 포지션은 매우 전문화되어 있다. 공격선수와 수비선수는 엄격히 구분되며 스페셜 팀도 전문화된 선수가 활약한다. 심지어 미식축구 선수들은 다른 포지션에 있는 팀동료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르고 자기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만을 수행하는 경우도 있다. 즉, 자기에게 주어진 업무만 잘하면 된다.

한편, 프로스포츠에서 운영하는 2군 제도, 트레이드 제도, 용병제도 또한 도구적 이성이 발현된 제도라 할 수 있다. 프로스포츠는 승리를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선수들도 팀의 승리에 공헌할 수 있을 때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러나 선수도 사람인지라 항상 최고의 경기수행능력을 유지하기 힘들다. 이러한 상황에서 팀은 선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2군은 1군 선수를 대체할 수 있는 자원을 길러낸다. 그리고 2군에서 적절한 선수를 찾지 못할 경우 타 팀에서 영입을 하면 된다. 특히 외국인 선수의 경우 즉시 전력감이 되지 못할 경우 바로 계약해지와 함께 새로운 선수로 교체될 수 있다. 이는 감독, 코치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도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자원일 뿐이다.

이렇듯 팀 도구적 이성이 중심이 된 프로스포츠는 목표달성을 위한 최선의 합리적 선택을 할 수는 있지만 이는 다양한 재능을 가진 창조적인 인간을 기계의 부품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문화산업의 하나로서 스포츠 비판

자본주의 문화산업에 대해 신랄히 비판하는 비판이론의 입장에서 상업화된 스포츠는 영화와 음악과 같은 대중문화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비판적 이성과 미적 진보, 그리고 인간 해방과는 거리가 먼 도구적 이성과 기술의 지배, 그리고 인간 구속과 소외를 가져오는 문화산업의 한 부류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비판이론은 상업적 관람스포츠를 주된 비판 대상으로 삼았다. 비판이론은 상업적 관람스포츠에 대해 ‘전체주의적 대중집회의 모델’로 평가한다. 이러한 스포츠이벤트는 대중매체와 결합하여 문화산업의 핵심콘텐츠가 되었으며 대중들에게 말초적 자극을 주고 무비판적 순응화를 야기하여 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멈추도록 만든다고 주장한다.

 

(3) 한계

비판이론은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산업을 비판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스포츠에 대한 유물론적 접근은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여전히 이는 마르크스주의가 갖는 본질적인 한계인 사회 상부구조의 자원성과 자율성 무시라는 전제 속에 놓여있다. 비판이론에서 스포츠는 자본주의 사회의 도구적 이성의 산물로서 인간의 몸은 객체화되고 물신화되며 계량적 기준에 의한 교환가치에 따라 평가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접근은 스포츠에 내재된 사회 현상과 구별되는 독립적인 존재 가치를 파악할 수 없게 만든다. 또한 스포츠를 단순한 자본주의체계의 반영으로 보기 때문에 오늘날 스포츠에 내포된 고유의 속성을 포착하기 어렵다.

특히, 문화산업의 하나로써 스포츠를 바라보는 비판이론의 입장에서 TV에 중계되는 프로스포츠는 대중들의 허위 욕구를 만들고 충족시키는 기제에 불과하며 이를 지켜보는 미디어 수용자들은 미디어의 노출에 피동적으로 반응하는 ‘군중’일 뿐이다. 즉, 미디어 수용자는 능동적이고 선택적이기보다는 자극에 단순 반응하는 수동적이고 조정되는 수용자라는 비판이론의 관점이 스포츠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사회행위자로서의 미디어 수용자들이 스포츠를 즐기고 관여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비판적이고 선택적인 행동과 해석 가능한 ‘공중’이라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다. 즉, 스포츠를 둘러싼 다양한 관계는 단순한 반영물이 아닌 사회적으로 구성되며 끊임없이 변화의 과정을 겪는다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현대인들에게 스포츠는 단순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위해 오로지 일에만 집중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 프로야구, NBA중계, MLB중계 시청의 시간은 그야말로 힐링의 시간이며, 재충전의 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복잡한 경기장을 찾는 것 보다는 침대나 쇼파에 누워서 자신이 보고 싶었던 스포츠 중계를 본다는 것은 최고의 휴식인 것입니다. 스포츠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손오공 티비가 요즘 많은 스포츠 마니아들로부터 호평을 얻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중계시청이 무료이며 스포츠 전문가들의 경기 예측결과도 공유할 수 있어서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