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정치의 관계
“스포츠는… 음악이나 다른 미술과 마찬가지로 정치를 초월한다… 우리는 스포츠에 임하는 거지, 정치나 사업에 관계하는 게 아니다.” – Avery Brundage
“스포츠가 정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꿈의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 Lord Carrington –
스포츠와 정치는 무관하다
스포츠의 원형을 찾아볼 수 있는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전차경주와 검투사 경기는 정치와 떼어낼 수 없는 관계였다. 주로 장례의식으로 거행됐던 이들 스포츠 스펙터클은 대중에게 일상의 고통을 해소하고 사회적 결속을 확인함으로써 지배층에 대한 불만을 누그러뜨릴 수 있도록 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근래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1972년 뮌헨 올림픽의 참사,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 대한 소위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의 연이은 불참은 근대올림픽이 다양한 정치적 의제들이 드라마틱하게 충돌하는 현장이었음을 보여준다.
스포츠가 “정치를 초월한다”고 말한 전 국제올림픽위원장 에이버리 브런디지(Avery Brundage)만큼 역설적으로 스포츠의 정치성을 보여주는 사례도 없다. 브런디지가 미국올림픽위원장을 맡고 있던 시절,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유치한 독일의 나치 정부는 이미 유대인에 대한 배척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그에 저항해 참가를 거부해야 한다는 미국 내부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미국팀의 참가를 결정한 건 ‘스포츠는 정치와 무관하다’고 믿었던 브런디지였다. 베를린 대회가 올림픽 역사상 가장 정치적인 대회였다는 사실은 이미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스포츠가 정치와 무관하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보여준다.
스포츠가 정치와 무관하다는 얘기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수사다. 옳든 그르든 좋든 싫든 스포츠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것을 비정치적이라고 하면 스포츠의 정치적 면모를 파악할 기회를 빼앗기게 된다. 케링턴 경의 지적과 같이 “스포츠가 정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꿈의 세상을 살며 스포츠를 더욱 정치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포츠와 정치의 관계를 논의할 때 핵심은 스포츠가 정치로부터 자유로운가. 그렇지 않은가가 아니다. 스포츠는 태생적으로, 그리고 앞으로도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렇다면 문제는 왜 자유로울 수 없는지, 자유로울 수 없다면 어떻게 스포츠와 정치의 관계를 이해하고 구축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이다.
왜 스포츠는 정치화되는가?
규칙에 따라 경쟁적 신체활동을 즐기는 스포츠 행위 그 자체는 전혀 정치적이지 않다. 그러나 다른 모든 사회구성물과 마찬가지로, 스포츠 행위가 사회적 상황에 놓이는 순간 어떤 형태로든 정치적 의미를 띠게 된다. ‘누가 더 참여하는가'(예, 흑인, 백인, 여성, 남성), ‘누구를 대표해서 참여하는가’, ‘어떤 목적으로 참여하는가’, ‘누구의 후원으로 참여하는가. 그 후원의 대가는 무엇인가’에 따라 스포츠 행위는 누군가의 이해(interest)와 가치를 대변하는가 하면, 다른 누군가의 이해와 가치를 무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프로축구 선수들이 삼성, LG와 같은 대기업 후원사의 로고를 그린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뛰는 것은 허용되지만, 그러한 대기업과 투쟁하는 노동조합을 지지하는 메시지를 적어 노출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자칫 당연해 보이는 대기업 로고의 노출은 사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노동과 자본 사이에서 자본의 이해(interest)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스포츠가 정치적 공간으로 기능하는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스포츠는 첫째, 집단을 대립시키며, 둘째 그 덕분에 사람과 시선을 집중시키는 한편, 셋째 사회 여러 부분에 걸쳐 있으면서도 넷째, 사회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오락’ 쯤으로 치부되기 때문에 오히려 정치적 공간으로 활용되기 십상이다. 하나씩 차례로 살펴보자.
(1) 대립적 속성
스포츠 경기는 본질적으로 경쟁과 우월성을 추구한다. 현대 스포츠는 지역, 국가 등 특정 집단을 대표하는 팀들 간의 경쟁을 기반으로 하며, 경쟁에서의 승리와 패배는 각 팀이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집단의 우열을 상징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러한 속성 때문에 스포츠는 간혹 특정 인종, 민족, 성별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한편, 다른 집단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은 히틀러가 스포츠를 활용해 게르만 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한편 유대인을 배척하기 위해 기획된 대회였다. 그 밖에도 스포츠 경기에서의 승부와 우열의 결정 때문에 강화되는 이념으로 서구 중심의 오리엔탈리즘, 인종차별적 사고, 남성우월주의나 여성혐오를 들 수 있다.
(2) 집합적 속성
스포츠 경기가 제공하는 “장엄한 스펙터클과 볼거리는 미디어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모은다. 특히 축구경기에서의 득점과 골 세리모니 (ceremony)와 같은 극적인 순간. 올림픽 시상식과 같이 국기(國旗)와 국가(國歌)를 통해 민족국가(nation state)가 투사되는 장면은 앞서 설명한 스포츠의 대립적, 경쟁적 성격과 만나 그 정치적 역량을 배가한다.
열광하는 사람이 한데 집결한다는 것은 그 열광의 에너지를 특정한 정치적 지향이나 상업적 선호로 동원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정치인은 주요경기가 열리는 스포츠경기장에 얼굴을 비추려고 하고, 기업은 브랜드 이미지 제고를 위해 스폰서십을 제공하고자 한다. 스포츠 경기장은 또한 억압과 차별이 고발되거나(스미스와 카를로스) 소외된 정치적 의제를 표현하는 (플레시몹이나 시위) 공간이 되기도 한다.
즉 사람들이 물질적, 감정적 에너지를 소모하기 위해 집결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여러가지 정치적 이슈가 자리할 공간을 마련한다고 할 수 있다.
(3) 교차적(cross-cutting) 속성
스포츠 정치학자인 Grix는 스포츠가 “젠더, 지역, 종교, 국가정체성, 이데올로기 인종, 경제, 사회경제적 지위, 건강, 교육 등의 다양한 정책” 영역에 걸쳐 있기 때문에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정책을 집행하는 행위는 이러한 정책영역들에서 자원과 이해(interest)가 배분되는 방식을 바꾸고 그와 관련된 스포츠 활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해 배분 방식의 변화는 당사자가 누구냐에 따라 환영이나 반발을 낳기 마련이다.
주의할 점은 누군가 반발하거나 저항하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정치적 행위는 진행중이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여성이 남성보다 스포츠참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공공연한 사회에서 진행되는 남성 중심의 스포츠정책은 남성의 참여를 권장하는 대신 여성의 참여를 제약한다. 스포츠참여에 대한 선호(preference)가 사회적으로 길러지는 것이라면, 스포츠를 남성의 전유물로 학습한 여성들은 남성 중심의 스포츠정책에 크게 반발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성들이 반발하지 않는 동안에도 스포츠 참여에 대한 선호는 편향적으로 육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남성 중심의 스포츠정책은 정치적이라 말 할 수 있다.
(4) 부차적 속성
스포츠는 정책의 각 영역과 관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작 ‘오락’ 쯤으로 여겨진다. 먹고사는 일과 관련 없는 가상의 ‘놀이 활동’, ‘볼거리’라는 스포츠 본래의 모습이 스포츠가 사회적 제도로 기능하는 가운데에서도 강력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스포츠는 사회 여타 부문에 비해 ‘부차적’으로 취급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스포츠에서 물질적, 상징적 자원이 배분되는 방식에 대해 교육. 경제, 의료와 같은 주요 영역에 대해서만큼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누가 스포츠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되는지(접근성), 스포츠 경력을 추구함으로써 어떤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당사자가 아닌 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심지어 인기를 얻은 스포츠 스타들에게 대중이 부여하는, 소위 ‘까방권(까임방지권)’이 보여주는 것처럼, 스포츠 영역에서 일어나는 제도적, 문화적 특혜에 관대하다. 2016년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스포츠가 사회적으로 부차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공적 감시의 공백이 생기고, 그 공백 속에서 정치적 악용의 소지가 생겨난다는 걸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스포츠 경기와 중계방송을 통해서 특정한 인종,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산, 재생산됨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다른 영역에서와 달리 이러한 관행이 가볍게 취급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정부기관이나 기업에서 여성을 고용할 때 외모를 반영하지 않는 것이 제법 상식으로 자리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스포츠를 중계할 때 해설진의 발언은 여전히 여성선수들의 외모에 초점을 두곤 한다. 스포츠는 이러한 공백을 활용하려는 정치적 시도들이 쟁투하는 공간이 된다.
스포츠와 정치의 관계를 연구하는 두 가지 접근
Easton(1953)에 따르면 정치란 ‘자원을 배분하는 행위다. 정치가 이루어지는 주요공간인 국회에서 국가공동체의 운영에 필요한 사업(주거, 의료, 교육 등)에 예산을 할당하는 걸 떠올려 보면 된다. 이러한 배분행위는 필히 분쟁을 동반한다. 어디에 자원이 배분되느냐에 따라 더 이득을 보거나 손해를 보는 사람/집단/가치가 갈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적 행위에 의해 분배되는 자원은 비단 ‘물질적인 것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가치, 규범, 정체성 등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정서적, 관념적 요인들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런 비정형의 자원은 물질적 자원의 분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물질적자원의 분배가 ‘정당한 행위’와 ‘부당한 행위’에 대한 관념을 만들어 내는 한편, 어떤 것이 ‘정당하거나 부당한 행위’라는 관념 또한 어디에 물질적 자원을 분배할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 때문에 스포츠의 정치적 성격을 이해하기 위한 연구는 이 두 관점을 모두 포괄할 필요가 있다. 어느 한 관점만으로는 전체적인 정치적 과정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두 가지 유형의 자원을 별도로 분석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접근방식을 분리할 수 있다.
(1) 공식적인 정부기구나 제도에 의해서 스포츠가 통치되는 방식에 대한 접근
정치에 대한 스포츠사회학의 첫 번째 관심은 “정책의 하나로서 스포츠가 분배되는 과정, 즉 스포츠정책이 수립. 집행되는 정치과정”에 대한 연구이다. 이러한 접근은 국가기구(국회, 행정부, 지방자치단체 등)와 준정부기구(스포츠 경기단체 등), 시민사회기구(시민단체 등)와 같이 스포츠정책에 관여하는 조직이나 이들이 관여하는 구체적인 스포츠정책 프로그램, 그리고 그러한 프로그램이 수립, 집행되는 과정과 결과에 관련되는 요소들을 연구한다.
이러한 접근의 예로 스포츠 메가이벤트의 개최나 프로구단의 운영을 둘러싸고 협력하거나 갈등하는 스포츠조직 간의 관계, 스포츠 조직의 운영에 동반되는 거버넌스딜레마(예. 자율성 vs. 책임성, 효율성 vs. 정당성 등), 엘리트스포츠와 생활스포츠와의 관계 설정, 스포츠 육성을 관장하는 플랫폼으로서 학교와 클럽의 역할 설계를 다루는 연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주로 스포츠 ‘정책’을 대상으로 하지만 스포츠정책이 “정치의 결과이자, 정치로부터 분리되어 이해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접근은 스포츠정치학과 정책연구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 고정관념, 담론에 대한 문화정치적 접근
두 번째 접근은 스포츠 현상에서 목격되는 고정관념, 담론에 대한 문화정치적 접근이다. 스포츠를 통해 유포되고, 도전받고, 겨뤄지는 ‘고정관념’, ‘담론’에 더 큰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정치적 “바람잡이로서 스포츠”의 역할을 다룬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정치적’이라는 말은 반드시 국가의 정치기구를 통해 행사되는 공식적 정치활동을 일컫는 것이라기보다. 특정한 생각과 시선이 개입되고 대결하며 권력이 배분되는 과정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예를 들어 왜 올림픽 100m 달리기 결승전은 흑인선수들이 대부분인 반면, 수영 결승전에는 흑인선수를 거의 볼 수가 없는지, 그러한 현상에 어떤 사회, 경제, 문화적 조건들이 관련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공식적 정치과정을 연구하지 않지만, 인종 사이에 분배되어 있는 권력관계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정치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연구의 결과는 우리들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바꾸고 주요 ‘담론’으로 작용함으로써 실제로 스포츠를 보급하는 스포츠경기단체나 스포츠 정책을 수립하는 정부가 모두에게 균등한 스포츠참여 기회를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안하도록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 외에도 문화정치적 접근의 연구는 스포츠 광고나 중계에서 당연시되거나 강요되는 젠더역할, 서구와 동양에 대한 고정적 이미지, 팬들이나 선수들의 인종차별적 구호나 행동, 스포츠 경기의 구성을 통해 드러나는 국가주의나 신자유주의적 강요와 같은 주제들을 다루며, 문화연구(cultural studies) 또는 신체문화연구(physicalcultural studies)라는 연구 흐름으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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