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 종목 중 하나로, 공을 링(림)에 넣는 것을 득점으로 하여, 제한 시간 안에 득점을 해 점수가 1점이라도 더 높은 쪽이 승리하는 경기이다. 한 팀당 5명의 선수가 선발된다. 주로 전후반전, 혹은 4쿼터로 진행되며, 전후반의 경우 20분씩 총 40분, 4쿼터의 경우 한 쿼터당 10분, 총 40분이 경기 규정 시간이다.
변종 종목으로 3X3 농구라 하는, 하프 코트(Half Court)에서 골대 하나를 놓고 하는 농구도 있다. 일명 길거리 농구 혹은 Street Ball. 또한, 여성 전용 구기인 넷볼이 19세기 말 농구에서 파생되었다.
1891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스프링필드의 YMCA 체육학교에서 근무하던 캐나다인 제임스 네이스미스가 YMCA 체육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칠만한 실내운동을 고안하던 중, ‘지상에서 10 피트 정도 떨어진 바구니에 공을 넣으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에서 착안되었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에 겨울 스포츠의 필요성과 속도감, 그리고 실내라는 한계성을 고려해서 13개의 기본 조항을 제정한 후, 처음으로 농구 경기를 창안하였다. 미식축구와 달리 몸싸움이 없는 안전한 스포츠를 만들고 싶어서 고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강력한 몸싸움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현재의 농구를 보면 ‘이게 뭔 소리야?’ 싶겠지만 네이스미스 박사는 처음 농구를 고안할 때, 선수들 간의 과도한 신체 접촉을 배제하는 스포츠를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농구가 생긴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과격한 몸싸움은 자연스럽게 용인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평범한 복숭아 바구니를 매달아서 공을 던져 넣는 경기로 만들었는데, 초창기엔 득점을 하면 바구니에서 공을 빼야 했기에 경기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도중 집에서 쓰다가 낡은 바구니에 공을 던졌더니 바구니 밑이 뚫려 경기가 끊기지 않고 바로 진행될 수 있어서 지금과 같은 골대가 창안되었다고 한다. 이 시범 경기를 본 체육학교 고위부들도 매우 높이 평가했으며, 이 스포츠 이름을 창안자 이름을 따서 네이스미스 볼로 지으려고 했으나, 네이스미스가 거절하면서 결국 직관적인 바스켓볼이란 이름이 되었다. 한국에서 지칭하는 농구(籠球)라는 이름 역시 이 바스켓볼을 직역한 말이다. 최초의 농구 경기는 1892년 1월 20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스프링필드 대학교에서 열렸다. 농구는 1891년 12월에 고안됐지만, 규칙 발표랑 공식 경기는 이듬해인 1892년에 이루어진 것이다.
농구공은 1894년에 처음으로 개발되었다. 농구공을 처음 개발한 곳은 미국의 스팔딩이었는데 여기서 골대도 만들었다. 하지만 1890년대 골대는 매우 불편했다. 링(공을 넣는 둥근 부분)에 손잡이가 달려서 당겨야지 밑이 열리며 공이 떨어지는 구조였다. 경기 도중 골이 들어가면 심판이 경기를 멈추고 이걸 당겨서 림에서 공을 빼내 경기를 이어하는 방식이었는데, 이걸 본 네이스미스는 “이건 그냥 바구니에 공을 넣고 빼내는 거랑 다른 게 뭐냐?”라고 했고, 결국 이 림은 오래가지 않아 파기되고, 밑에 구멍이 뚫린 지금의 골대가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출전 선수 제한이 없어서 양 팀에서 무려 20여 명이 다 나와 한 경기에 50여명 선수가 몰려들어 경기가 이뤄지기도 했기 때문에 아예 팀별로 코트를 양분해서 가드는 자기 코트에서 수비만 하고, 포워드는 상대 팀의 코트에서 공격만 했으며 중앙에 있다가 양쪽 모두를 오갈 수 있는 포지션으로 센터를 두기도 하였다. 중앙선을 기준으로 뒤쪽에 있는 가드들을 백코트, 앞에 있는 포워드와 센터를 프런트코트라고 불렀으며 이게 현재까지도 선수들을 포지션으로 나누는 용어로 사용된다. 어느 한 번은 이긴 팀이 거둔 점수가 1:0이었다. 지금처럼 100점대 점수가 나오는 농구에 익숙한 이들이 봤더라면 참 답답한 경기 구성이었을 듯하다.
농구 발전에 있어서 큰 기여를 한 게 바로 미국 유대인 사회였다. 유대인들은 주로 밖에서 활동하는 운동 같은 것을 꺼렸는데, 혈기왕성한 젊은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실내에서 여러 명이 땀을 흘리고 구기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매력이었고, 192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농구라면 유대인들이나 하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아예 농구선수의 70%를 유대인이 이룰 정도였다.
이 당시 주류 사회 백인들이나 이민자들은 야구나 미식축구 등을 좋아했다. 하지만 차츰 다른 사람들도 농구의 매력에 빠져들었으며, 주로 대학가를 중심으로 아마추어 농구단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60년대만 해도 백인층도 많이 하던 스포츠였으나, 지금은 흑인들이 주로 하는 스포츠이고 흑인 비중이 높아졌다. 하지만 지금도 유태인 나라인 이스라엘에서 축구를 능가하는 구기 종목으로 인기를 가지고 있고, 이스라엘 유태인으로선 처음으로 2000년대 후반에 와서야 옴리 카스피가 NBA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NBA 후원사 중 하나인 시온스 은행을 비롯한 유태인 자본력 투자도 엄청난 종목이다. 유대계 자본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많지만 애초에 농구라는 운동을 보급하고 프로 농구를 키운 것이 바로 유대계 사회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유태인들의 농구에 관한 관심과 투자는 당연한 일이다. 이러다 보니 NBA 간부 중에도 유대인이 많아서 30년이나 장기 집권하던 전 NBA 총재 데이빗 스턴이나 2014년에 새롭게 총재에 오른 아담 실버도 유대인이다.
1932년에는 국제농구연맹이 결성, 전 세계에 통일된 농구 규칙을 전파하였다.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대회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1976년 제21회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여자 종목이 채택되었다. 또한 1992년 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회 때부터는 프로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을 허용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여자 농구의 경우에는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온 이민자이며, 매사추세츠의 스미스 여자대학교에서 체육교사로 일하던 센다 베런슨이 네이스미스가 농구를 만든 다음해인 1892년 농구 규칙을 조금 더 부드럽게 수정하여 여학생들에게 전파했고 크게 인기를 끌면서 여자 농구도 대중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농구의 발명자인 제임스 네이스미스는 1959년, 여자 농구를 전파한 센다 베런슨은 1985년 네이스미스 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한때는 FIBA 회원국이 FIFA 가입국보다 많았던 적도 있었으며, 다른 스포츠와 달리 경기 규칙을 자주 개정하여 보다 흥미로운 스포츠로 더욱 발전시키고 있다.
농구의 인기
북미권에서 나온 구기 종목 가운데가장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덕분에 미국 내에서의 수익도 많지만, NBA가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미국 내 다른 스포츠를 압도한다. 그래서인지 NBA에선 아시아나 남미, 유럽은 물론이고, 아프리카에도 가서 친선경기와 사인회를 하며, 해외 농구 투자 및 지원도 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축구 다음으로 대중화된 구기 스포츠로, 남미, 유럽이나 아시아, 아프리카 상당수 지역에서도 인기가 많은 편이다. 남미에선 아르헨티나나 브라질이 강호로 평가받는 편인데, 예컨데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농구 결승은 ‘아르헨티나 vs 이탈리아‘로 이뤄졌다. 이 대회에서 아르헨티나는 딱 두 개의 금메달을 땄는데 그게 바로 ‘농구와 축구’에서였다.
유럽의 경우 지역에 따른 차이가 좀 있지만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그리스 등과 리투아니아, 슬로베니아, 세르비아, 러시아 등 남/동유럽권에서 인기가 좋은 편이다.특히 스페인의 농구 리그는 세계 리그 랭킹에서 NBA 다음인 2위를 달릴 정도로 인기가 있다. 스페인은 서지 이바카와 파우 가솔, 마크 가솔 형제 등 유명 NBA 리거들도 상당수 배출한 바 있다.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있는 튀르키예에서도 축구 다음으로 농구 인기가 좋다고 한다.
동유럽과 소련 같은 공산권 나라들에서도 농구 인기가 좋았다. 덕분에 냉전 시절 대리전 양상도 띠어 소련 해체 전까지 미소간 국가 대표팀 경쟁은 나름 치열했는데, 올림픽에서는 소련이 미국을 1972, 1988년에 두 번 꺾었고, FIBA 농구 월드컵에서는 소련 해체 전까지 소련이 전적에서 5승 3패로 미국에 앞서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1959년 대회에서 처음 맞붙은 소련이 미국을 71-36으로 뭉갰다가 이후로 몇 점 차 승부가 계속 벌어졌다. 그러다가 1978년 대회에서 97-76으로 소련이 압승을 거두며 우승했고 1982년 결승전에서는 95-94, 1점 차로 소련이 미국을 이기고 우승했다. 그러다가 1986년 대회 결승에서는 87-85로 미국이 설욕하며 소련을 제치고 우승한 게 마지막 소련 시절 대결이었다. 하지만 소련이 무너지고 1994년 러시아로 처음 나온 농구월드컵 결승에서는 드림팀으로 이뤄진 미국에 91-137이라는 결승전 사상 최다패로 참패를 당했고 미국은 1959년 대회에서 당한 35점 차 대패를 제대로 설욕했다. 그러다가 1998년 대회에선 러시아가 66-64로 미국을 이겼다. 2002, 2006년 대회는 러시아가 불참했다가 2010년 이뤄진 대결에서는 89-79로 미국이 이기면서 농구월드컵에서 소련 시절까지 합치면 미국과 러시아는 6승 6패를 서로 기록 중이다.
한편 그리스 같은 경우는 2천년대 후반 당시 NBA 현역 유명 선수던 조시 칠드레스를 미국에서 주는 돈 비슷하게 제시하면서 세금 부담과 여러 혜택(승리 수당 및 우승 수당 추가)까지 붙여서 그리스 리그로 불러온 적까지 있었다. 이는 미국에서도 제법 큰 화제였고, 이때 르브론 제임스는 농담조로 미국만큼 다른 나라도 돈을 준다면 나라도 가볼 생각이 있다는 말도 했다. 당시까지 미국 선수로서 유럽 리그로 가는 선수는 아직 NBA에서 뛸 실력이 안 되는 유망주이거나, 더 이상 NBA에서 뛸 실력이 안 되는 퇴물선수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칠드레스는 당시(07-08 시즌) 팀 사정상 전 경기 후보로 나왔지만 출장 시간이 주전에 가까운 30분 정도였고 두 자릿수 득점도 기록한 준주전급 선수였다.
물론 NBA 스타급 기량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하도 우승에 실패하는 것에 질렸고, 오랫동안 뛴 팀으로부터 팽당한 것에 염증을 느껴 우승 한 번 해보자고 그리스로 넘어간 도미니크 윌킨스 같은 특이 케이스도 있지만(윌킨스는 우승 후 NBA로 돌아와서 은퇴했다), 미국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타국 생활을 하는 경우는 당시까지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아직 나이가 젊은(만 24세)데다 어느 팀에 가도 제몫을 해줄 수 있는 준척급 선수가 자발적으로 유럽에 간다는 것은 당시 엄청난 충격이었다. 물론 칠드레스의 그리스행으로 인해 미국 스타들이 유럽에서는 NBA의 절반도 안 되는 경기 뛰며 상대적으로 편하게 선수 생활을 하고, 기타 혜택까지 받을 수 있다는 게 알려져 지금은 NBA급 기량이 있는 미국 선수들이 타 리그에서 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예전보단 훨씬 줄어든 편이다.
사실 어느 스포츠나 그런 경향은 좀 있지만, 일반적으로 리그 수준이 떨어질수록 주는 돈이나 대접이 기량에 비해 더 많아지는 편이긴 하다. 한때 준NBA~NBA 팀에서 11, 12번째 선수급 선수들이 KBL에서 뛴 적이 있는데, 공공연한 비밀인 뒷돈과 세금 감면 외에도 구단 측에서 해주는 대접이 어마어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임금 체불 없이 꼬박꼬박 제때 주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실제로 유럽 내 결코 농구 후진국이라 할 수 없는 리그들에서도 임금 체불은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일인데, 한국 리그는 대부분 모기업의 탄탄한 자금으로 운영되다 보니 임금 체불은 정말 구단을 넘어 모기업 자체가 고꾸라지기 직전이 아닌 이상은 찾아보기 힘들다.덕분인지 한국 리그는 이곳의 경험이 외국인 선수들의 이력에 큰 도움이 안 됨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인기가 있는 편인데, 그만큼 실력 대비 대접이 후한 게 크다.
동아시아의 경우 중화권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데 축구를 뛰어 넘는 인기 스포츠다. 중화권의 학교 운동장은 축구장이 아닌 야외 농구장을 기준으로 면적을 잡을 정도다. 중국의 프로 농구 리그인 CBA가 중국 축구 이상으로 인기가 있으며, 거대한 중국 시장을 의식해서인지 NBA도 단골로 중국을 오고 가며, 시범 경기도 자주 가진다.#대만에서도 야구와 함께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이며 특히 생활 스포츠 종목으로 가장 인기가 높기 때문에 타국에서는 축구가 가지고 있는 실생활에서의 인기와 위상을 대만에서는 농구가 가지고 있다.한국에서는 1990년대 농구대잔치의 인기로 한국프로농구를 출범하여 지금까지도 주요 겨울 프로 스포츠로 이어지고 있으며, 주로 실생활 스포츠로 인기가 있다NBA도 국내 농구 팬들에게 인기가 있어 케이블에서 주요 경기를 중계해주고 있다. 일본은 프로 농구는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늦게 시작했는데, 여차저차하다 2010년대 중반 B.리그로 통합되어 이어지고 있다. 몽골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구기 스포츠가 농구라고 한다. 특히 3X3 농구가 강자.
동남아시아의 필리핀은 농구가 국기이고, 미국의 영향을 받아 농구 열기가 엄청난 나라이다. 자국 농구 리그인 PBA와 NBA는 국민적 인기를 자랑한다. 그 외 서아시아의 이란이라든지, 중앙아시아의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등에서도 축구 다음으로 농구가 대중적인 인기 스포츠이다.